요즘 나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취미, 다도....그냥 차 즐겨마시기.
아래는 나의 전용 찻잔과 커피포트.

옛날엔 커피마시는거나 차 마시는 거나 다 똑같다...라는 정말 무성의한 시각으로만 생각했었는데(그당시엔 커피도 잘 안마시던 때라 관심이 없었지...) 마시다보니 하루의 기분이 많이 좋아진다는걸 느낀다. Happy~
보리차에 둥글레차가 차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아, 결명자차도 있었다. ㅋㄷ
지금은 이것들이 그저 팔기 위해 값싸게 생산해서 대량공급하기 위한 상품이란 생각이 든다.
신촌 민토(민들레영토)에서 이슬차를 먹는 순간 '아~ 차란 이런거구나' 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슬차... 다먹었는데.... 언제 티백 사다 먹어야지~ 한통에 5000원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ㅋ
최근 아버지께서 중국 하이난도(해남도) 다녀오시면서 차를 하나 사오셨다. 이름하여 철관음(鐵觀音). 뭔가 있어보이는 이름에 Box도 멋지다. (아래사진)

가루로 들어있는게 아니라 왠 쪼글쪼글한 알갱이가 여러개 들어있는데 건조압축시킨 잎이다.

요만한 거 한 대여섯개 정도 넣고 끓는 물 80ml정도 넣고 3분 완성~! 잎이 물에 불으면 꽤 커진다. 코딱지만한 알갱이 하나가 3cm정도되는 잎으로 변한다니 ㅋㅋ 처음엔 멋모르고 수북~하게 컵받침에 넣었는데.(맛이 너무 진했다;)
나의 차를 마시는 요령이래봐야 특별할 건 없지만, 왼손으론 컵 밑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컵잡고 후루륵~(뽀인트 별표 50만개) 소리나게 마신다.뜨거운 차를 이렇게 마시면 공기가 찻물에 많이 섞이기때문에 많이 식고, 산소의 대량함유로 인해 차의 맛이 더 상큼해진다(믿거나말거나ㅋㄷ) 차를 마시는 이유는, 물에 스며든 향과 맛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처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잎을 잔뜩 집어넣어서 너무 진하게 만들거나, 너무 안넣어서 맹물맛인지 찻물맛인지 구분 안가게 하는건 좀 아니올시다. 살짝~ 맛이 나게끔. 이게 내 기준. 차를 마시는 동안 앞으로도 매우 행복할 듯.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의외로 철관음이 엄청난 차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알고있는거래봐야 무협소설에 나오는 용정차 같은건데, 아버지 덕에 차에 대한 안계(眼界)를 넓히게 되었다. ㄳ~~
====================퍼옴 : 네이버 지식in=====================================
산지는 중국 복건성(福建省) 안계현(安溪縣)이며 안계지방에는 오(吳)나라 시절에
재상을 지낸 바 있는 황이간(黃夷簡)이 북송을 천하통일시킨 후 은퇴하여 살았던 곳이다.
황재상은 만년의 고달픔을 차나무를 심고 재배하여 그 차잎을 따 차를 만들어
차마시는 것으로 달래가며 영위하였다.
한 나라의 재상이 노년의 삶을 석양의 노을에 비겨 그 비애를 차로서 조용히 다스렸다는
것은 의미로운 일이다. 그 때문에 안계지방이 차의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안계지방에는 철관음차 외에도 이름난 차가 많다.
그 차 이름이 백모차(白毛茶), 철나한(鐵羅漢), 모혜차(毛蟹茶), 불수차(佛手茶)
수선차(水仙茶), 대백차(大白茶), 오퇴차(烏堆茶), 용변차(龍邊茶),
오룡차(烏龍茶)등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도 철관음차는 이름난 군계일학격인 차이다.
오늘날 안계현의 특산물로서 철관음차가 안계현의 대명사격이 되었다.
철관음차는 뜻밖의 내력을 안고 있다.
안계지방에 위(魏)씨라는 성을 가진 이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
매일 밭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래되어 허물어져 비가 새는 암자가
있었다. 그 암자는 스님도 계시지 않는 빈 암자였다.
위씨는 신실한 불교신도로서 그 허물어져 있는 암자를 지나칠때 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스스로 이 암자를 중수하여야겠다고 마음먹고, 아침에 밭으로
일하러 갈 때나 저녁에 돌아올 때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암자에 들어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관세음보살을 정성껏 돌보며 먼지를 털고 정화수도 올리며 발원하였다.
가난한 농부로서 암자를 새로 중수한다는 일은 엄청난 역사였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기필코 그 일을 해야한다는
크나큰 믿음을 남몰래 깊이 가꾸었다.
마음속에 원력이 있는 이는 그 행동반경이 비범하다.
어느날인가 그날도 여느날과 같이 일하러 나가면서 암자에 들러 정화수를
올리고 청소를 하고 예불을 드리고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면서도
암자에 들러 참배하였다. 그날밤 꿈속에서 허물어진 암자의 관세음보살이
인자한 웃음을 띄우며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암자 뒤에 있는 동굴속에 귀중한 보물이 있으니, 네가 가져라.
세세생생 써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니 너 혼자 가지지 말고
반드시 이웃에게도 나누어 주거라."
이런 꿈을 꾸고 암자 뒤의 동굴에 들어가보니 관세음보살이 말씀하신 보물은 없고
나무 한 그루가 있기에 그거라도 옮겨 심어 볼까하는 마음으로 자기네 뜰에 심었다.
관세음보살의 현몽이 있고 하여 부지런히 나무를 가꾸었더니 정성을 기울인
보람이 있어 나무는 잘 자랐다.
나무가 자라나 좋은 향기가 풍겨나기에 그 잎을 따서 차를 만들었다.
차의 맛과 향기가 좋아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더니 너무나도 좋아하므로
나무 재배를하여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며 차농사를 지었다.
차를 많이 생산하여 그것을 외부로 팔려고 하였더니 차상인들이 몰려와
차이름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그때서야 정작 차이름이 없어 당황하다가
위씨가 관세음보살의 현몽으로 얻은 차인데 철관음보살의 도움이었다고
하였던바 차상인들이 그러면 그 관세음보살은 쇠(鐵)로 만들어졌으니
"철관음차"라고 이름지으면 좋을것 같다 하여 차이름이 철관음차가 되었다한다.
그 후 위노인은 차농사를 지어 그 수입으로 허물어진 암자를 복원하였다는,
성실한 믿음을 가진 이의 듣기좋은 이야기 한 토막이 차에 붙여진 것이다
철관음차는 일년에 네 차례 만든다.
처음에는 두춘차(頭春茶),
두 번째 여름에 만든 것을 이춘차(二春茶),
아주 더운 여름에 만든 것을 삼춘차(三春茶),
가을에 만들어진 것을 사춘차(四春茶)라 하고
봄에는 입하전후이며,
여름에는 하지 중심으로,
더울 때는 대서를 전후하여,
가을에는 백로를 중심으로 타를 따서 만든다.
이 차는 향기가 오래가며 맛이 무겁고 깊다.
반 발효차로서 동남아에서 제일 많이 애용되고 있는 차 가운데 하나다.
달여먹는 방법은 작은 차관에 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한 번 가셔내고 다음 섭씨95도의 물을 부어 30초간 있다가 따르면
황갈색(黃褐色)의 짙은 차가 된다.
차 맛은 쓴 가운데 단 느낌이 있는데
단 느낌이 진한 편이어서 노인네들이 즐기는 편이라고 한다.
철관음차 역시 같은 중국 대륙에서 생산 되는 것도 다섯 가지의 등급이 있어
제일 좋은 극품차에서 보통차까지 가격엔 많은 차이가 있다.
대만에는 타이페이 시 변두리 목책(木柵) 지구의 장호산 일대를
관광차밭으로 개발하여 철관음차가 생산되고 있지만 지질탓인지 대륙것과 다르다.
보통 시중이나 대만 중정공한 튜티프리센타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판매되는
차는 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좋은 제품만 구할 수 있다면 천하의 별미(別味),
별향(別香)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출처 : | 인천시무형문화재10호범패와작법무 | 글쓴이 : 모봉형진 원글보기 ![]() |